
2016-05-17 연중 제7주간 화요일
독서:야고 4,1-10 복음: 마르 9,30-37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30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작기도
성령님, 제가 예수님을 닮아 가난하게 살아가길 바라게 하소서.
말씀 들여다보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어 겸손해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신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남을 이기고 첫째가 되고 싶어 하지만,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진정한 첫째가 되려면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당신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당신을 받아들인 것이라 선언하시는데, 이 말씀이 겸손해져야 한다는 앞의 가르침과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수님 시대에 ‘어린이’가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상징했다 하더라도, 그런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과 겸손해지는 것 사이에 직접 연관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보잘것없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만큼 자기를 낮추어 겸손해지는 일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을 그 사람의 수준에 맞춘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어린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기도 그렇게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결국 예수님이 ‘어린이’를 통해 겸손을 가르치신 것은, ‘겸손’이 그저 마음가짐과 태도를 조심스럽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다. 겸손이 단순히 개인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말씀 따라 걷기
*겸손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는가, 어떤 식으로 겸손한 사람이 되려 했는가?
*예수님은 어떤 식으로 겸손해지셨는가? 기도와 성찰을 통해서인지, 만남을 통해서인지 그분이 보여주신 삶의 모습에 머물러 보자.
마침기도
예수님,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음에도 자신을 낮추어 죄 많은 인간들과 함께하셨으니, 저도 당신의 모범을 따라 세상의 ‘작은 이들’과 함께하게 하소서. 아멘.
- 윤성희(구약성서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