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묵상 - 2016년 2월 3일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주님의 착한 종 2016. 2. 3. 17:16





2016-02-03 연중 제4주간 수요일
독서:2사무 24,2.9-17 복음: 마르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시작기도
성령님, 제가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말씀 들여다보기
공생활을 시작하고부터 예수님은 쉴 새 없이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며 당신의 놀라운 권능을 드러내신다. 하지만 정작 당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셨을 고향에서는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다. 사람들이 그분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의 치명적 약점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온갖 병을 고치고 심지어 죽은 이마저 살려낼 수 있는 분이지만 ‘불신’이라는 고약한 무기 앞에서는 달리 힘을 쓰지 못하신다.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예수님의 능력은 ‘믿음’이라는 승인 절차 없이는 활성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려고 보내신 당신 외아들에게 이런 치명적 약점을 남겨두셨을까? 그것은 아마 구원마저도 강요하고 싶어 하지 않는 하느님의 속 깊은 뜻 때문일 것이다.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억지로 하면 폭력처럼 느껴진다. 인간 본성 가장 깊은 곳에 자유를 향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믿지 않을 자유를 주셨다. 그것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러워지고 심지어 죄에 빠지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부정하지 않으셨다.

말씀 따라 걷기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 나를 억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본디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함부로 자유를 부정할 수 없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마침기도
비록 죄에 빠지고 구원마저 거부하더라도 믿지 않을 수 있는 자유마저 주신 하느님, 제가 당신의 그 깊은 뜻을 이해하고 더욱 능동적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소서. 아멘.

- 윤성희(구약성서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