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30 연중 제3주간 토요일
독서:2사무 12,1-7ㄷ.10-17 복음: 마르 4,35-41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시작기도
성령님, 제게 진실을 볼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말씀 들여다보기
고대 농경사회에서 물을 다스리는 일은 생계와 직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물이 귀한 근동 지역에선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고대 근동 신화에는 창조신이 바다 괴물을 무찌르고 혼돈스러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이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구약성경 속 하느님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은 “바다를, 그 큰 심연의 물을 말리신 이”(이사 51,10)이자 “당신 힘으로 바다를 놀라게 하시고 당신 통찰로 라합을 쳐부수신”(욥 26,12) 분, “꾸짖으심에 물이 도망치고”(시편 104,7) “경계를 두시니 물이 넘지 않고 땅을 덮치러 돌아오지도”(9절) 않게 하신 분이다.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은 이와 같은 창조주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분이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그대로 되기 때문이다. 이는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죽은 것과 다름없던 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이 이제는 물까지 다스리실 수 있는 분임을 드러낸다. 이쯤 되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금방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제자들이 늘 자기들과 함께 다니는 그분이 바로 창조주 하느님과 하나이신 그분의 외아들임을 깨닫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명백한 진실도 믿음이 없다면 도무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말씀 따라 걷기
*농경사회에서 물을 다스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지금 나에게 무엇인가?
*예수님이 그것을 어떻게 다스리고 계신가? 그분이 그렇게 하고 계심을 믿는가?
마침기도
예수님, 당신은 늘 함께 있어도 믿음이 부족해 당신의 참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을 견디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저에게 믿음의 은총을 내리시어 당신이 진정 누구이신지 깨닫게 하소서. 아멘.
- 윤성희(구약성서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