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김수한 추기경

김수한 추기경님 이야기 (1)

주님의 착한 종 2015. 12. 18. 11:12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 (1).


서울대교구장 직에서 은퇴한 지 만 9년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겨운
벗이자 착한 목자로서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혜화동 할아버지'의 넉넉한
웃음과 힘있는 강론은 예나 지금이나 세파에 지친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
가 된다.

2003
5월부터 63회에 걸쳐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를 연재해 좋은 반응
을 얻은 평화신문은 창간 19주년 특별기획으로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를 시작한다. 김 추기경이 은퇴 이후 삶과 신앙생활을 중심으로 들려주
는 이 시리즈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큰 목자의 사상과 인간적 면모
를 진솔하게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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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율리안나 비서수녀님이 "어떤 분이 기도와 미사를 요청했다"
며 이름과 세례명을 적은 쪽지를 건네줬다.

임신 중인 유치원 교사인데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최악의 경우 뱃속 아
기와 임산부 생명 중 택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는 수녀님을
통해 기도 부탁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얼마나 다급했으면 내게 기도를 요청
했을까 싶었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두 생명을 모두 구해 달라고 한참 기도했다. 그리고 기
도 말미에 "하느님, 사실 그 자매님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제 체면을
봐서라도 꼭 들어주십시오. 사람들은 추기경이 기도해주면 뭔가 다를 거라
고 믿습니다"며 떼를 썼다.

내 나이 어느새 85살이다. 기력이 쇠하고 여기저기 아프다 보니 할 수 있
는 일이라곤 기도 밖에 없는 것 같다. 아니, 기도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요즘도 본당이나 단체에서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
이 간간이 들어온다. 나를 잊지 않고 찾아 주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 하지만 행사 당일의 건강 상태를 장담할 수가 없어 참석하겠다고 선뜻
약속을 하지 못한다.

날이 갈수록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잠이 안 와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
깐 깊은 잠에 빠지곤 하는데 미사시각에 맞춰 놓은 자명종 소리에 몸을 일
으키면 손발이 아프고, 정신이 몽롱하다. 류머티즘 관절염 탓에 손발 통증
이 심하다. 정신이 들면 "오늘 하루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
부터 바치게 된다('그런데 이 통증만 덜어 주시면 더 감사하겠는데…' 라고
하느님께 꾀를 내보기도 하지만). 밤새 잠을 설치면 목소리마저 시원치 않
아 공식 석상에 나가는 것을 머뭇거리게 된다.

지난해 연말에도 몇 군데 본당에서 견진성사와 설립30주년 기념미사 등의
주례를 부탁했다. 그 때마다 "그 날 아침에 일어나 봐야 참석 여부를 얘기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추기경이 온다고 소문내지 말고 행사를 준비하라"
말했다. 미사가 오전 11시에 시작되는데 두 시간 전인 9시나 돼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화하고 찾아가는 형편이다.

어느 성당인가 초대를 받아 갔는데 마당에 나와 박수를 치며 환영하던 교
우들이 깜짝 놀라면서 박수를 멈추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이유를 얼추
짐작한다.사람들 뇌리 속에 있는 내 모습과 옷이 헐렁해 보일 정도로 야윈
지금의 모습에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자매에게 "왜 박수를
치다 마세요?"라고 넌지시 물었더니 "너무 마르셔서 딴 사람인 줄 알았
어요"라며 야윈 노구(
老軀)의 내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 선후배
사제나 아는 분들 병문안을 가면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분께
맡기세요"라고 위로한다.

나 역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산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것'
적어지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려는 마음이 강해진다. 내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남은 시간을 잘 살다가 하느님 품에서 잠들게 해 달라는 것이다.
시간이 그다지 많이 남지는 않았을 게다.

1998
5, 서울대교구장 직에서 물러나니까 사람들이 "섭섭하지 않냐?"
고 많이 물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시원섭섭하다"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는데, 문제는 홀가분해서 덩실덩실 춤을 출 만큼 시원한 것도
아니고 눈물이 날 만큼 섭섭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무뚝뚝한 남자도 오랫동안 몸담은 직장을 떠날 때는 눈물을 흘리
건만 난 30년 동안 살았던 명동에서 혜화동으로 거처를 옮기는 날에도
무덤덤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님 말씀이 맞다. 어릴 때 어머니와 어디를 가더라도 난
나대로 앞서 걷고 어머니는 뒤에서 따라 오셨는데 언젠가 "네 형(김동한
신부)하고 가면 심심찮게 말도 붙이고, 재미난 얘기도 들려주건만 너는
어찌 그리 돌부처 같느냐"고 불평하셨다.

나처럼 감정이 둔한 사람이 세상 천지에 또 있을까 싶다. 가슴 벅차게
기쁜 일이 생겨도, 억 장이 무너지는 것처럼 슬픈 일이 닥쳐도 도통 눈물
이 나질 않는다. 오죽했으면 성령기도회에 참석해 작심하고 눈물의 은사를
청했겠는가.

난 오래 전부터 사도 베드로처럼 통한의 눈물을 쏟고 싶다는 원의(
願意)
갖고 있었는데 여태껏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던 날,두려움에 떨며 그분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세 번째 부인할 때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면서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라고 말했다. 곧 이어 닭이 두 번째 울자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하신 예수님 말씀
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했다.(마르 15, 66-72)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눈이 짓무를 정도로 평생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울었다고 한다. 또 체포됐을 때는 자신 같은 배신자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바로 매달릴 수 있겠느냐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길
원했다고 한다.

나 역시 베드로와 다를 것이 없다. 인간적 의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님
께 전적으로 의탁하지 못한 적이 있다. 그로 인해 그분 뜻이 아니라 내 뜻
을 앞세우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 내 얄팍한 생각을 하느님의 뜻 인양
떠벌린 적은 왜 없었겠는가.

그 동안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을 생각하면, 그럼에도 내게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을 헤아리면 베드로보다 더 서럽게 통곡해야
마땅하다.

어떨 때는 내 마음이 사막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은수자들이 절대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은혜로운 사막이 아니라 그저 모래바람만
불어대는 황량한 사막 같기만 하다.

내 뉘우침과 성찰이 부족함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여러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
계 속>

[
평화신문, 736(2003 8 10),김원철 기자]
[
편집 : 원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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