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마음을 열고

[스크랩]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주님의 착한 종 2010. 10. 29. 12:16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만추의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영주 부석사에도 깊은 가을이 깃들고 있다. 노오란 은행나무 숲길이 길게 이어지는 진입로며, 그 유명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바라보는 소백 연봉에도 오색 단풍이 번져 가고 있다.

하지만 이맘때는 또한 부석사 수난(?)의 시기이기도 하다. 부석사의 소문난 만추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주말이면 시골 장터처럼 북적대기 때문이다. 혜곡 최순우 선생이 말했던 풍경은 기대할 수 없다.

↑ 주변 음식점들

↑ 절 진입로 난전

↑ 사과가 익어가는 주변 과수원

↑ 절 입구의 인공폭포와 연못

↑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진입로

↑ 떠 있는 바위

↑ 목어와 법고

↑ 안양루 아래에서 본 풍경

↑ 동쪽을 보고 앉은 아미타여래불

↑ 무량수전 현판

↑ 무량수전

↑ 멀리 소백산 줄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 가람이 계단식으로 배치된 부석사 전경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히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한 그 풍경 말이다.

늦가을 부석사의 참모습을 감상하려면 주말을 피해서 이른 아침과 해 저물 무렵에 찾는 것이 좋겠다. 인기척 끊어진 절집 풍경은 그야말로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을 내보인다.

소백산 기슭을 따라 계단식으로 자리한 부석사는 절집으로 오르는 길이 인상적이다. 일주문을 지나 펼쳐지는 은행나무숲길을 따라 가면 천왕문과 범종각, 안양루, 무량수전에 이르는 동안 쉼 없이 계단을 밟아 올라야 한다. 그 길이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다. 계단이라 해서 삭막한 풍경도 아니다. 누각을 문처럼 통과하며 한 발 한 발 올라 갈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새롭다. 그 풍경은 이심전심의 풍경이다. 누군가와 함께 떠난 걸음이라면 곁에 있는 그의 손을 절로 찾아 잡고 말없이 바라보게 하는 풍경이다.

숱한 시인묵객들이 찾아 노래한 안양루와 마주하면 고졸한 그 아름다움 앞에 침묵하고 만다. 소백 연봉에 노닐던 구름과 바람들이 밤이 되면 안양루에 깃들어 잠든다고 하던 옛 시인의 노래가 절로 떠오른다. 일찍이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은 안양루의 풍광을 "안개가 끼고 서리가 내린 가을, 밝은 달이 하늘에 떠 있으면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며, 길은 천 리가 되며 몸은 푸른 하늘 위에 있어 하늘에 올라 구름에 타는 듯하다"고 했다. 아마 그가 만난 가을도 이런 가을날이었으리라.

안양루를 지나 만나는 무량수전은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그네를 맞는다. 국보 제18호로 지정된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인데, 단조로우면서도 우아한 건축미가 자랑인, 우리나라에서 첫손 꼽히는 건축물이다. 현판의 글씨는 공민왕의 친필이다.

역사적으로 인정받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에서는 무량수전이 앞선다.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흙으로 만든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은 고려시대 불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됐다. 이 불상은 특이하게도 남향의 절집 안에 동향으로 앉아 있다.

혜곡 선생을 흉내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저무는 절집을 한 번 바라보자. 어둑어둑해지는 주위 풍경과 함께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것을 경험하리라.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있네.

방랑시인 김삿갓의 절창처럼 이 가을이 가기 전 부석사의 만추를 즐겨볼 일이다.

*맛집

부석사 입구에 산채정식과 비빔밥을 선보이는 종점식당(054-633-3606), 부석사식당 등이 있다. 풍기역 부근 서부냉면집(054-636-2457)은 평양냉면으로 유명하다. 순흥전통묵집(054-634-4614)의 묵과 조밥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별미다.

*찾아가는 요령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에서 빠져 지방도 915번을 타고 순흥-부석사로 향한다. 소수서원을 지나 부석 사거리에서 3km 더 들어가면 부석사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절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

이준애 (여행 칼럼니스트)

출처 : 꿈과 사랑동산
글쓴이 : 푸른솔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