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자) 사순 제1주간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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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5(24),6.2.22 참조 주님, 예로부터 베풀어 오신 당신의 자비와 자애 기억하소서.
원수들이 저희를 짓누르지 못하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모든 곤경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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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이 백성의 정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육신을 절제하며 선행을 실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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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예언자는 주님의 명령을 받고 니네베로 간다.
죄악의 도시 니네베가 멸망할 것을 전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요나의 예언을 듣고 뉘우친다. 니네베를 용서해 주십사고 하느님께 청한다.
임금마저 잿더미 위에 앉아 단식을 시작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보시고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신다(제1독서).
군중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한다. 믿음도 없이 청하기만 한다.
주님께서는 요나 이야기를 하신다.
니네베 사람들도 요나의 말을 믿었기에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받아들이라는 권고이시다(복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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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베 사람들은 악한 길에서 돌아섰다.>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10 1 주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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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50),3-4.12-13.18-19(◎ 19ㄴㄷ) <선창자가 후렴을 선창하면 교우들은 후렴을 받아 반복한다.> ◎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이어지는 시편은 선창자가 하고 교우들은 후렴을 반복한다.> ○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 ○ 당신은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 제가 번제를 드려도 반기지 않으시리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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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2,12-13 참조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나는 너그럽고 자비롭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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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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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희에게 주신 선물을 봉헌하오니,
이 예물이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순 감사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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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2 참조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르소서.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 모두 즐거워하고 영원토록 환호하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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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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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이 성사로 저희를 끊임없이 길러 주시니, 너그러이 내려 주신 이 성체로 저희가 생기를 찾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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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믿겠다고 합니다. 흥정입니다. 그런 모습은 지금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적이 있다는 곳’에 사람들은 모여듭니다.
기적을 확인하면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를 걸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요나의 표징’을 이야기하십니다. 그
가 연출한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기적적인 일’로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회개가 먼저입니다.
새 마음으로 기도와 성사 생활을 하면 기적은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호기심으로는 결코 만날 수 없습니다. 기적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현대판 솔로몬’을 찾고 있습니다.
물질을 앞세워,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솔로몬’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욕심에서 조금만 물러서면 솔로몬보다 훨씬 위대하신 분을 만날 수 있는데,
그걸 시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외치고 있습니다.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기적은 정성의 결과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심혈을 기울이면 ‘기적적인 일들’은 일어납니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정성을 망각하기에 욕심에 빠집니다.
욕심에서 자유로워지는 마음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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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4일 성 몬타노와 루치오 순교자
[ICON]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북러시아 화파. 16세기. 파리 국립미술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장면의 묘사는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는 곳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조각되거나 그려졌다. 서방교회는 주로 요한 복음의 수난사에 따라 그린 반면 동방교회에서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마태오 복음의 수난사에 대한 강론에서 영감을 받아 조직적이고 상징적으로 그렸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서있으며, 그들 뒤에는 거룩한 부녀들과 백부장, 군인들,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군중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마리아를 향해 숙여진 예수의 얼굴은 지극한 고통중에도
고귀한 위엄과 평화를 지닌 표정을 짓고 계신다. 이는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그분의 몸은 죽음 안에서도 부패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아래에는 골고타 동굴이 열려 있는데 이는 죽음과 지옥에 대한 예수의 승리를 상징한다. 이 동굴에는 아담의 해골이 보인다. 전승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가 구원해야 될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무덤위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이것은 구약의 아담과 신약의 아담이 연결됨으로써,죽음을 불러온 첫 아담이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된것을 표현한 것이다.
십자가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건축물은 예루살렘 성벽이다. 당시의 모든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역시 성벽 바깥쪽에서 고통을 받았다.즉, 예수의 시신이 도시, 성전 그리고 박해자들을 불결하게 만들지 않도록 도시 밖에서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또한 영성적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6세기 경부터 이런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밖에서 수난하신 것처럼 이 땅 위에는 차지할 도성이 없고, 다만 앞으로 올 도성을 바라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벽을 헐고 나아가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 13,12-13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그러므로 우리도 성문 밖으로 그분께 나아가 그분의 치욕을 겪읍시다."그리고 그리스도의 팔이 달려 있는 횡목은 하늘을 배경삼고 있다 이렇게 창공에 놓인 십자가는 악의 세력에서 온 우주을 해방시킨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우주론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성모는 왼손으로는 망토를 쥐고 오른손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내밀고 있다. 그녀는 비탄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반대편의 요한은 영적인 공포와 번민으로 가득차 오른손으로 얼굴을 쥐고 왼손은 십자가를 향하여 내밀고 있다. 성모의 뒤의 여인은 왼손으로 자기뺨을 만지며 통곡하고 있다. 요한 뒤의 터반을 쓴 사람은 백부장 론지노스이다.
이렇게 ’십자가에 못박히심의 이콘’은 천상에로의 창문이 되며, 우리를 그 당시의 사건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며 구원의 신비와 결합하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주여,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주의 후사에게 강복하시고 믿는 자에게 원수에 대한 승리를 주시고 십자가로 보호하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