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스크랩] 2009년 4월 1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주님의 착한 종 2009. 4. 1. 12:3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4월 1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제1독서 다니엘 3,14-20.91-92.95

그 무렵 14 네부카드네자르가 물었다.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 너희가 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또 내가 세운 금 상에 절하지도 않는다니, 그것이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뿔 나팔, 피리, 비파, 삼각금, 수금, 풍적 등 모든 악기 소리가 날 때에 너희가 엎드려, 내가 만든 상에 절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그러면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낼 수 있겠느냐?”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가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이 일을 두고 저희는 임금님께 응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17 임금님,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내실 수 있다면, 그분께서는 타오르는 불가마와 임금님의 손에서 저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18 임금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 상에 절하지도 않을 터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19 그러자 네부카드네자르는 노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보며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가마를 여느 때에 달구는 것보다 일곱 배나 더 달구라고 분부하였다. 20 또 군사들 가운데에서 힘센 장정 몇 사람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묶어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지라고 분부하였다.
91 그때에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깜짝 놀라 급히 일어서서 자문관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묶어서 불 속으로 던진 사람은 세 명이 아니더냐?” 그들이 “그렇습니다, 임금님.” 하고 대답하자, 92 임금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 결박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
95 네부카드네자르가 말하였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자기들의 하느님을 신뢰하여 몸을 바치면서까지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들의 하느님 말고는 다른 어떠한 신도 섬기거나 절하지 않은 당신의 종들을 구해 내셨다.”


복음 요한 8,31-42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3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35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39 그들이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40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41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제가 컴퓨터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퍼스널 컴퓨터란 것이 들어왔을 때인 1984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25년을 컴퓨터 가까이 살았다고 말할 수가 있지요. 그래서 웬만한 것은 다 고치고, 또한 프로그램도 어느 정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뭐 인기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달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많은 신부님들이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제가 전화를 해서 문의를 할 정도니까요.

이 정도쯤 되니까 제 앞에서 컴퓨터에 대해서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괜히 참견하고 싶어집니다.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것도 그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요. 어떤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그리고 제 컴퓨터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합니다. 물어보는 것이 괜히 자존심 상하는 것 같아서지요.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아는 체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괜히 나만 손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며칠 전에 컴퓨터 내에서 프로그램 충돌이 자주 일어나서 하드디스크를 깨끗이 포맷을 했습니다(처음 구매했을 때의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쓰던 프로그램을 다 설치했는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전에는 잘 쓰던 프로그램이 작동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틀 동안 끙끙 맸습니다. 제 자존심 때문에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서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안 되어서, 결국 그 프로그램을 만든 회사에 문의를 했지요.

딱 1분만에 해결했습니다. 전화만 하면 1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저는 자그마치 이틀 동안 끙끙댔던 것이지요. 해결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나를 드러내려는 것, 그래서 아는 체하고 잘난 체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내 모습에서 벗어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렇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율법을 잘 알고 잘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계명인 사랑을 들고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기준에 맞는 것이 아니라면서 예수님을 반대하고 있지요. 즉,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과 말씀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기준과 판단에 어긋난다면 무조건 믿지 않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게 만듭니다. 그런데 나 역시 그럴 수 있음을 앞서 말씀드린 저의 체험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나의 틀에서 벗어나 이제 주님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예수님 말씀처럼 죄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반대로 친구가 없는 곳에서도 그를 칭찬하도록 하라(토머스 풀러).



두레박(‘좋은 글’ 중에서)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많은 피난민들이 화물 열차를 타고 남으로 피난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차가 어느 조그만 시골역에 멈추어 서더니, 떠날 줄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배고픔에 지친 피난민들은 기차에서 내려 밥을 지어 먹으려 하였습니다.

그 때는 꽁꽁 언 겨울이라 물을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침 근처에 우물이 하나 있었으나, 두레박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깡통으로 바가지, 양철 그릇 따위에 줄을 매어서 두레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피난민들은 서로 자기가 만든 두레박을 남에게 빌려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의 두레박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미처 두레박을 만들지 못한 사람들이 남의 것을 빌려쓰려고 하였지만, 아무도 빌려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본 아저씨 한 분이 커다란 깡통으로 두레박을 만들어서 우물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 좁은 우물에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물을 길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두레박을 하나만 두고 그것을 여러 사람이 순서대로 쓰면 될 텐데, 모두 제각기 자기의 두레박을 만들어 물을 긷느라고 이 추운 데서 애를 쓰고 있군요, 더욱이 두레박이 없는 분은 추위에 떨며 여러분들이 물을 긷는 것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아저씨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 두레박을 우물 옆에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피난민들은 그 역을 떠날 때까지 순서대로 그 두레박을 마음껏 쓸 수 있었습니다. 시간도 많이 절약되었고, 서로 먼저 뜨려고 쓸데없이 물을 흘리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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