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관 벨이 울렸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할머니 한 분이 땀을 뻘뻘 흘리시며 서 계셨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 할머니셨다.
어떻게 오셨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가방에서 옥수수 네 개를 꺼내 놓으셨다.
그리고는 전대를 열어 꼬깃꼬깃한 만원 한 장을 펴서 주시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는 복날이 다가오는데 아무것도 못해 오셨다며
"신부님! 옥수수 맛있게 잡수셔! 그리고 만원은 맛있는 거 사 드셔!"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옥수수 네 개와 만원 한 장이 어떤 것인지 안다.
집에서 직접 옥수수를 삶아 시장에 파는 할머니는 시장에 나왔다가 돌아가시는 길에
성당에 들러 나를 위해 별도로 챙겨 뒀던 옥수수 네 개를 주신 것이다.
그리고 만원은 옥수수를 팔아 버신 돈이었다.
할머니 전대에는 천원 지폐만 있었고, 만원 지폐는 딱 한 장뿐이었다.
그 한 장을 내게 주신 것이다.
나는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할머니 고집(?)에 지고 말았다.
지금도 그 만원은 내 책상 위에 그대로 있다. 그 만원을 쓸 수가 없었다.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그 만원을 보면 정신이 번쩍 난다.
옥수수와 만원을 왜 주셨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느님 사랑과 신자분들 기도로 살아가는 사제이지만 이럴 때는 자꾸만 작아지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늘 받기만 하고 베풀지 못하는 삶을 반성한다.
할머니께서 주신 옥수수 네 개와 만원은 나에게 큰 기쁨을 줬지만
한편으로는 신부로서 잘 살라는 채찍이 됐다.
지금 이 시간에도 땀을 흘리시며 시장 한켠에 앉으셔서 옥수수를 파실 그 할머니를 위해
기도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 늘 간직하시고 오래오래 살아가시도록….
평일 미사 강론에 신자분들께 이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이젠 다른 할머니들께서
앞을 다퉈 김치며 과일들을 갖다 주신다.
이러려고 강론한 게 아니었는데….
참으로 우리 할머니들 정성이 대단하시다.
샘(?)이 나셔서 본당 신부에게 더 잘하시려는 것이다.
할머니들의 이런 샘(?) 덕분에 나는 요즘 잘 먹고 잘 살아간다.
신부로 산다는 것! 참으로 큰 은총이다.
신자분들 정성도 정성이지만 살아가면서 이런 작은 일들이 감동을 주고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자분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는 말씀이 있다.
작은 것에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작은 행복으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함을
옥수수 네 개와 만원짜리 한 장으로 나에게 알려주신 그 할머니께 감사드린다.
- 평화신문에서
드보르자크 / 낭만적 소품 Op.75 Romantic Pieces for Violin and Piano, Op.75 Anton Dvork 1841∼1904 정경화 Vi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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