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마음을 열고

소멸의 불꽃

주님의 착한 종 2008. 5. 30. 10:28

 소멸의 불꽃

- 도종환님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에서 - 

 

 

찬란한 소멸, 소멸하는 것들이 내뿜는 찬란한 빛은 아름답습니다
존경받았던 육신을 불태우며 정점에서 천천히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다비의 불꽃, 마지막까지 불타다 가는 단풍의 새빨간 손가락,
소멸하는 것들에게도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친구는 젊은 시절 조폭들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칠팔년 전 모두들 어려울 때 파산을 하였고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형제들도 일찍 세상을 버렸고
늙은 어머니와 궁핍과 병상에 함께 있던 아들 하나를
남겨 놓은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친구는 생의 마지막 몇 해를 하느님께 매달리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했습니다
자기보다 더 가난한 친구를 위해 기도하였는데 그 기도를 들어주셨고,
돈이 많은 형을 원망하면서
증오의 기도를 올렸는데그 기도도 들어주셨답니다


 기도했던 대로 형이 죽었고,
불의의 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부검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갈가리 찢겨지는 형의 육신을 지켜보다가
자기가 하느님께 청했던 그대로가 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며 경악했다고 합니다

 

친구는 마지막 기도를 청했습니다
그것은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자기의 목숨을 내놓고 기도했습니다



쓸모없이 살다 가는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것과
살려달라고 청하지 않을 테니
대신 아직도 할 일이 있는 친구가
병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 마지막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믿으며
친구는 병든 자신의  몸을 대학병원에 기증하고
해부용으로 내놓는다는 서약을 하였습니다
자기를 수술해준 의사 친구에게도 그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그 친구의 전화를 받은 것은 죽기 얼마 전,
자기 몸을 기증하겠다고 서명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친구는 중고등학교 때 운동선수였습니다
후덕하고 인기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 주먹들과 어울려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공원을 지나가다가
독재정권 규탄 집회에서 연설을 하는 나를 보게 되었답니다
살면서 그는 강하였고 나는 약했습니다
그런데 약골인 내가 거대한 폭력과 맞서 있는 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보았고 두고두고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친구가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으면서
하느님께 마지막 기도를 한 대상은
나였습니다.
자기가 죽는 대신 나를 낫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느님이 들어주고 계신다는 걸 얼마 전부터
느까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서도
소멸하는 것들 속에 내재한
아름다운 불꽃을 보았습니다
내 하루하루의 목숨이 다른 이들의 기도와 소망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나는 누구를 위해 불타고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Giovanni Marradi / I Love You


 

 

'하늘을 향한 마음 > 마음을 열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향기로운 마음  (0) 2008.05.31
벗이란?  (0) 2008.05.30
삶의 비망록  (0) 2008.05.29
마음을 담아 말을 건네세요  (0) 2008.05.29
비도 오고 너도 오니  (0) 2008.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