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스크랩] 饅頭(만두)의 유래는?

주님의 착한 종 2008. 1. 11. 10:27

제갈량이 노강을 건너기 위해 만든 제수용


 



우리나라 설날 음식 중에 떡국에 함께 넣어 먹는 음식으로 ‘만두’라는 음식이 있다. 이 만두라는 음식은 북쪽 지방의 음식이라 남쪽 지방에서는 설날에 이 음식을 잘 안 먹는 것으로 안다. 이 만두와 모양이 비슷하게 생겼으나 내용물이 전혀 다른 음식이 바로 중국의 ‘만터우(饅頭)’이다.
 
중국에 처음 와서 아침을 먹으러 갔더니 만두가 있기에 먹음직스럽게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가 입맛을 버렸던 기억이 난다. 내용물이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으니 그 무슨 맛이 있었겠는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한국의 만두와 비슷한 음식을 먹으려면 ‘쟈오즈(餃子)’라는 음식을 먹어야 했다. 이 쟈오즈에 대한 일화도 있지만 여기서는 만두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중국의 삼국시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너무 잘 알려진 시대이다. 蜀(촉), 吳(오), 魏(위) 세 나라가 爭覇(쟁패)를 벌이는 ‘三國志(삼국지)’는 국민 필독서가 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이 촉나라의 재상인 제갈량도 또한 너무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제갈량이 친히 병사들을 이끌고 남방을 평정하러 전쟁에 나섰다. 그는 남방의 수령인 孟獲(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 주면서(七縱七擒)’ 마침내 정복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북쪽의 中原(중원) 정벌에 대한 근심을 말끔히 해소해 버렸다.
 
  그런데 제갈량이 군대를 거느리고 조정으로 돌아오는 길에 ‘瀘江(노강)’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면서 뇌성벽력이 치니 강물 위에는 거대한 파도가 미친 듯이 일어나니 군대가 강을 건널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 연유를 알아보았더니, 이것은 강물 속에 살고 있는 물귀신이 殃禍(앙화)를 일으키는 것이라 반드시 물귀신에게 제사를 지내야만 강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지방의 풍속에 따르면 마흔 아홉 개의 사람의 머리와 많은 검은 색의 소와 흰 양을 祭需(제수)로 사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사람의 머리를 어떻게 제수용품을 사용할 것인가?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제사를 지낸다면 더욱 원혼이 많아지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아주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으니, 軍中(군중)에 있는 주방장에게 명하여, 가장 좋은 밀가루를 사용하여 어른의 머리 형상을 만들고, 소와 양고기로 속을 채우도록 하였다. 그러고 나서 제갈량은 제문을 짓고, 이 고기 속으로 만들어진 밀반죽 덩어리를 가지고 강변에 이르러 江神(강신)의 제단에 제사를 지냈다.
 
 다음 날, 과연 바람은 자고 물결은 고요해 져서, 제갈량의 大軍(대군)은 순조롭게 강을 건널 수가 있었다.
 
 이후로부터 當地(당지)의 원주민들은 서로 다투어서 제갈량의 방법을 모방하여, 사람의 머리로 祭需(제수)를 사용하는 殘酷(잔혹)한 방식을 점차로 폐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饅頭(만두)’가 ‘灣頭(만두)’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만두’라는 음식은 현재 중국에서 먹는 만두라기보다는 ‘빠오즈(包子)’라고 하는 것이 옳다. 왜냐 하면 당시에 만들어진 만두 속에는 고기가 들어갔지만 지금은 만두 속에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빠오즈 속에 고기를 넣거나 야채를 넣어서 먹는다.
 

출처 : 무역카페
글쓴이 : ♣처음처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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