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창업/땀 흘리기

[스크랩] 전철내 장사꾼들...

주님의 착한 종 2007. 9. 19. 09:22

전철내  장사꾼들...

 

“백화점에서 얼마 하는 00을 천 원짜리 한 장만 받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천 원짜리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철도청 서울지역본부에 따르면 작년부터 지난 8월 말까지 지하철 내 물품 매매 행위로
즉심재판에 회부한 잡상인의 수는 총 2159명.
 
그 중 10회 이상 단속된 상습범으로 형사입건 된 사람의 수는 8월 말 현재 172명으로
작년 한해 동안 검거된 29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사업 실패나 생계 곤란,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이 현금을
즉시 만질 수 있는 매력에 이 일에 나서고 있다.
 
서울지역본부 공안담당관실 오재행 조사주임은 “지난 1997년 환란 때 지하철
잡상인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최근에는 불경기로 잡상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한 지하철내 판매상은 “서울 지하철에서 장사하는 사람만 200여명이 족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인천행 지하철 안에서 1회용 밴드를 팔고 있는 김 모씨. “매일 하는 일이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늘 떨린다”는 그는 "이 일도 끈기와 오기가 없으면 못한다”고 말했다. /정순화 인턴기자
 
◆그들만의 규칙
 
“뒤에서 앞으로”, “기다린 순서대로 탄다”
지난 8일 오전 9시 반,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지난 7월부터 지하철 안에서 반투명 1회용 밴드를 팔고 있다는
김모(34)씨가 200개의 물건과 1ℓ 패트병에 담은 물을 손수레에 싣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차량내 판매 물품을 전문적으로 대주는 업체에서 물건을 막 받아온 직후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늘 떨린다”는
 
그는 기자에게 “말을 어떻게 떼야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팔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한다”며 다섯 손가락과 손등에 갖가지 밴드를 붙였다.
 
동대문역에서 지하철에 올라탄 김씨는 몇구간을 그냥 보내더니
서울역을 지나 남영역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자, 여기 종합 밴드 하나 가지고 나왔습니다.
(조금전에 밴드를 붙인 손가락을 내보이며) 옛날 밴드와는 달리 끈적거리거나 떨어지지 않아요.
65개를 1000원짜리 한 장만 받습니다.”
 
한창 열을 올리며 영업을 한뒤 다음 칸으로 계속 옮겨가던 그가 노량진을 지나 멈칫했다.
앞 칸에서 한 남자가 얼굴에 얇게 썬 오이를 붙이고 ‘오이팩 미용칼’을 파는 것을 발견한 것.
 
“원래 지하철내 영업은 전동차 맨뒤쪽에서 앞쪽으로 가면서 하는 게 기본 ‘룰’이에요.
그런데 종종 저렇게 앞에 끼어드는 ‘얌체족’들이 있어요.
 
중간에서 마주치면 맥 빠지죠. 뒷북 치는 꼴이니까.
” 김씨는 “한 칸에서 같이 팔 수는 없다”며 앞칸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칸에서 머무른채 장사를 하며 몇개역을 그냥 보냈다.
김씨가 1호선 신도림 역까지 판 밴드는 단 2개로 매출은 2000원.
 
신도림역 다음의 구로역에 도착하자 그는 내려서 반대편 승강장으로 건너가
다시 남영역으로 돌아갔다.
 
그는 구로역과 남영역 구간이 1호선 판매상들의 일반적인 코스라고 했다.
남영역 승강장에 돌아온 시각은 오전 10시 30분.
10여 명이 넘는 ‘지하철 잡상인’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상인’들끼리는 모두 잘 알고 있는 분위기였다. “몇개 못팔았어” “장사안돼”란 말을 주고 받았다.
열차가 들어오자 한 남자가 “이번엔 누가 타냐?”고 했고,
 
“기자가 타!”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러자 기자라 불린 40대 여성이 물건 보따리를 들고 지하철에 올랐다.
 
김씨는 “구로역과 남영역을 오가며 두 역에 도착할 때마다
‘판매상’들은 전동차를 타는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지요.
차가 들어올 때마다 한 명씩 순서대로 탑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보통 한 열차에 한 사람이 타는 게 장사에 유리하지만, 요즘엔 사람이 많아져서
‘뒷빵’이라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뒷빵’이란 2~3명이 한 열차에 함께 탈 경우,
먼저 기다린 사람이 몇 칸 앞에 타고 앞으로 훑고 지나가며,
늦게 온 사람이 맨 뒤 칸에 타서 따라가며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 지난 8일 오전 10시 30분경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지하철 안에서 천원 짜리 물건들을 파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판매상들은 늘어갔다. /정순화 인턴기자
◆대학생 형제부터 50대 부부까지 “수입은 하기 나름”
 
이들이 파는 물건도 가지각색. 핸드폰 케이스, 선풍기 커버, 키토산 건강패드,
치약, 돋보기, 옷솔, 우산 등등.
 
대부분 중국산으로 계절과 유행에 따른 히트 품목이 있다고 한다.
상인들은 손수레나 여행용 가방, 007가방에 물건을 싣고 다닌다.
 
부산에서 출판사를 다니다 4년 전부터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김모(36)씨는
“보통 보증금 10만원을 내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고, 대체로
그 날 수입의 50% 정도를 사무실과 나눠 갖는다”며
 
“동대문, 청량리, 의정부, 신길 등 서울 시내에서 물건을 떼 오는 사무실이 20여 곳 정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장에서 물건을 직접 떼 와 팔면 70%는 가져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물건을 대는 1호선 신길역 인근의 한 사무실 관계자는
“최근 사무실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우리 사무실에는 대학생 형제도 나와서 열심히 하고 있다”며
“시간 제한이 없으니까 수입은 하기 나름”이라고 말했다. 또
 
“물건을 매일 바꿀 수 있지만 자기한테 맞는 물건이 있다.
한 가지 물건을 꾸준히 하다 보면 나중엔 익숙해져서 잘한다”고 설명했다.
 
구로역에서 만난 지하철 잡상인 이모(54)씨는
“길에서 사주를 봐주다 경기가 안 좋아져서 이 길로 왔는데 벌이가 이게 더 낫다”며
 
“하루에 8만원씩 한 달에 못해도 200만원은 만질 수 있다”고 말했다.
1만원짜리 전기면도기를 큰 여행용 가방에 넣어 다니며 파는 50대 부부는
 
 “물건 한 개당 5000 원씩 남는다”며 “하루에 4~5시간 동안 전철을 갈아타며
40개 정도만 팔면 20만원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공안 부족·법적 구속력 약해 단속 어려워
 
쫓고 쫓기는 악순환
먹고 살기 어려워 나온 사람들이지만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파는 것은 불법이다.
 
이들은 인근 소란 등의 이유로 경범죄 위반에 해당,
3만원의 범칙금을 부과받거나 철도법 89조에 의거해 즉심재판에 회부돼 3월 이하의 징역 또는
5 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또 상습범은 형사입건 된다. 이 일을 하다 400여 번 경범죄 위반으로 단속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불법행위지만 지하철 내 판매상들은 활개를 치고 있다.
 
이에 대해 철도청 공안담당관실 오재행 조사주임은 “대부분 벌금을 내지 않고 있고,
낸다 하더라도 큰 부담이 없다. 즉심재판에는 출석도 하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라며
 
“형사입건도 생계형 범죄로 분류돼 불구속 되기 때문에 제재의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작년부터 올해까지 형사입건 된 172명 모두가 불구속으로 나와서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김정민 조사팀장은 “공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법적 구속력이 약한 상태에서는
관리·단속에 한계가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쫓고 쫓기는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라고 말했다.
출처 : 보따리 클럽
글쓴이 : 카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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