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2022년04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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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4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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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장엄한 수난 복음을 읽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억울하게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의 길을 가시는 장면을 읽고 또 읽습니다.
그분께서 맞이하시는 죽음의 의미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류의 죄 때문에 그 길을 가시며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죽음을 받아들이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수난 복음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너무나도 무능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즈음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 중에 가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서
예수님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신에게 기도하고
이웃 나라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전쟁의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러시아의 무자비한 침공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건만
신적인 권능을 발휘하여 고통을 벗어나는
극적인 사건은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국민이며, 어설픈 대통령이라고
조롱을 받았지만 그들은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총을 들었고
총이 없으면 몽둥이라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무능하고 무기력해 보일지언정
비굴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무죄를 구차하게 항변하지도,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으십니다.
참으로 의연한 모습으로
삶과 죽음을 하느님 손에 맡기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겉으로는
미약하고 무기력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어떤 인간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내면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읽어봅시다.
그리고 참 그리스도인을 닮아 갑시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코린토 1서 1장에서 옮겨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고 매달린 채
죽음을 맞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한 인간의 무능과 어리석음만을 바라보는
이방인들과는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힘과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앙인들에게 허락하신
하느님의 참된 지혜의 선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들린 사건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모두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모두가 다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주님의 옥좌 앞에 서듯이
십자가 앞에 바로 설 것입니다.
아멘.
우크라이나를 위하여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