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2022년04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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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4월06일)
우리는 창세기에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웁니다.
그분의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가 무엇인지
하느님의 참 뜻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모습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악은 왜 처음부터 막지 않으셨는지..
그래서 당신의 아들마저 못박히게 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바라보며
한 켠으로는 가슴 아파하고
또 한 켠으로는 감사의 눈물을 흘립니다.
전능하신 그분도 후회할 일이 있으셨던
것일까요?
그래서 사이비들의 공격을 기꺼이 받으시는지요.
저희는 잘 모릅니다.
정녕 그 분의 참 뜻을..
하지만 순간적인 그분의 노기를 거두시고
우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거두어 주시려는…
그래서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오시고
스스로 인간이 되시어 후회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시고 결국 십자가를 지심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신
인간적 사고로는 이해 못할 사랑과 순명을
이해하는 것. . 이것이 철학인데,
아마도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인간들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복음 요한 8,31-42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충고를 듣습니다.
위의 사진은 이화여대 사범대학 교육관 벽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성경 말씀입니다.
아마도 성경을 모르고 이 구절을 접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마치 교육학의 지식을 많이 배워
학문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무지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식으로
해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앞, 즉 31절의 말씀,
즉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를
반드시 묶어서 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를
이해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진리는 무엇인가..
쉽게 말해 여기서 진리는 하느님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을 알게되면,
하느님을 통해 이 세상의 진리를 알게되면
죄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도록 썼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한 마디 대꾸도 할 수 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인간은 본성상 자유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삶을 시작할 때에도
주어진 환경과 인간관계에 따른
수많은 외적 자극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러한 처지는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선택의 상황에서
인간은 자유 의지를 통해
특정한 선택을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선택을 부추기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진리를 깨달으면
우리는 진정 자유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온갖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 자신이 구원과 해방이요
자유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유한한 생명은
영원한 생명 자체이신 주님 안에서
공포와 불안이 없는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재차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진리와 자유는 이렇듯 가까이 있습니다.
자유를 느껴야 진리가 되고,
진리가 아니면 자유를 주지 못한다는
표현입니다.
자유는 날아갈 듯이 홀가분합니다.
불안을 제압하는 기쁨이 되지요.
그런데 우리는 무엇에서 자유를 찾고 있습니까?
재물이 아닐까요?
재물을 자유의 출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재물 때문에 신앙마저 귀찮은 것으로 여긴다면 …
우리는 유다인들과 똑같이
오늘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겠지요.
자유는 선물입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기쁘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자녀인 우리에게 주시는 그분의 능력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믿음의 길을 간다면
그분께서는 누구에게나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