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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2월19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2. 19. 05:57

오늘의 묵상(2022년02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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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雨水)입니다.

그래서인지 어제 낮부터는 오랜만에 온화한 날씨를

보였는데, 내일부터는 다시 강추위가 몰아친답니다.

병원마다 감기 환자가 몰려들고 있다고 하네요.

코로나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데

감기에 걸려 기침이라도 하면

혹시 이 사람이 코로나?” 하며

의심의 눈총을 받을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셔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9,2-13으로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전장이? 마전장이의 뜻을 아십니까?

혹시 마전동 본당 교우분들은 아실까요? ㅎㅎ

 

사전을 찾아보니

피륙 바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

이라고 설명하고 있네요.

쉽게 말하면 “천을 볕에 쬐여 희게 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군요.

 

참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자주 볼 수 있었던 직업들이

지금은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골목길에 징을 울리는 소리가 나면

아하, 굴뚝 청소하는 사람이 왔구나.

또는 작은 종이 떙그렁 땡그렁 울리면

두부 장수가 왔네.. 그랬었는데,

이젠 자취를 감춘 추억의 직업들이며 소리들입니다.

 

물론 지금은 저도 잘 모르는

너무나 많은 신종 직업들이 생겨났지요.

 

 

어부였던 베드로는 목수처럼

집도 지을 줄 알았었나 봅니다.

예수님께 초막을 지어드리겠다고 했으니까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첫 이슈가

집 문제, 부동산 문제이지요..

그래서 생각 나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 성당에 다니던 형제셨는데

이 분은 늘 셋방을 전전하며 사셨습니다.

오십의 나이를 훌쩍 넘겼지만

한 번도 제집을 가져 본 적이 없이,

재개발 공사에 밀려 여기저기

지하 단칸방을 옮겨 다녔습니다.

 

그 형제가 저와 술자리에 같이 앉으면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이웃과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자신의 초가집이 그립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고향이 경상도 두메산골이라고만 했던 그 형제는

도시 생활의 고단함이 얼굴에 깊이 배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함께 미사를 드린 날,
마침 오늘의 이 복음을 들었는데,

그 형제는 초막 셋을 지어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싶다는 베드로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고 했습니다.

 

그저 초막집이라도 좋으니 이리저리

떠날 걱정 하지 않고 어린 시절처럼 그렇게

걱정 없이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대답일 수 있지만, 그 형제의 묵상이

그 어떤 나눔보다 깊이 다가왔었던 것으로

느껴졌었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오르십니다.

산 위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을 체험합니다.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할 수 없을 만큼

예수님의 옷이 새하얗게 빛났다고 했습니다.

생명의 충만함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그 황홀한 체험 안에서 베드로는

그곳에 주님을 잡아 두고 싶었나 봅니다.

베드로도 많이 피곤했을 테지요.

그러니, 머리 둘 곳 없이 예수님을 따라

정처 없이 떠도는 고단한 삶을 멈추고,

초막이라도 지어 그 충만한 기쁨에

머물고 싶었던 마음일 것 같습니다

사실 그 형제가 어린 시절 가난의 그 고통과

초가집의 불편함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시절의 삶이 그리운 것은,

사실은 그 고향 집이 아니라,

마음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어떤 그리움 때문아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 그리움의 끝이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있음을

잠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제자들은

모두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이유는

그들을 두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 텐데요.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부활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이제 곧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을 잃고 난 다음

스승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자신들도 따라야 할 운명에 놓일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나약한 제자들은

그러한 십자가의 길에서 좌절감을 맛보고

중도에 포기하려는 유혹에 빠지겠지요.

 

그러나 바로 그럴 때에 제자들이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기억하여,

믿음과 바람을 지니고 끝까지

자신의 십자가를 잘 지고 나갈 힘을

낼 수 있게 하시고자, 당신의 변화한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십니다.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신지를 잘 느낄 수 있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