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2022년02월14일)
오늘의 묵상(2022년02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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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제도 아니고 존경 받는 수도자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평신도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제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너무도 고맙고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많은 분들이 감기는 다 나았느냐,
아픈 데는 없느냐..
건강 조심해야 한다..
기도 많이 드렸다…
이런 말씀들을 너무나 많이 들었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고 황송할 뿐입니다.
걱정해주시고
축원과 기도를 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리며,
주님께서 “이제 그만 와서 쉬거라”
하실 때까지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8,11-13 입니다.
어제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서
빵 일곱 개로 허기진 군중 사천 명 가량을
배불리 먹이신 뒤 그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였다는 기적 이야기에 대해
묵상을 했습니다. 기억 나시죠?
이 기적이 일어난 바로 뒤.
오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기적에 대한 표징을 요구합니다.
하늘의 기적을 보여 주면
승복하겠다고 합니다.
조건을 다는 것이지요.
믿음에 조건을 다는 것은
결코 성숙한 자세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 줘야만’ 믿겠다는 것은
어린이의 신앙이지 어른들의 신앙은 아닙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요청을
탄식하며 거절하실 수 밖에요.
다음 주일 교중미사 후에 저희 본당에서는
위령기도의 이론 교육 계획을 잡았습니다.
상가를 방문하거나 교회의 전례에 따라
우리는 위령기도를 자주 하게 되는데
위령기도, 즉 연도의 시편을 노래하면서
왜 이 시편을 노래하는지..
이 시편의 뜻은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습관적으로 노래만 합니다
그래서 꾸리아를 통해 공지를 부탁했습니다.
아무래도 선종봉사회(연령회) 회원을 제외하면
레지오 단원들이 연도를 제일 많이 하니까요.
그런데 신청자는 제 예상의 1/20 수준..
마찬가지로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참된 의도가
감탄을 자아내는 신비한 표징에 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그 외적인 기적 사건 속에
감추어진 내적 신비를 우리가 깨닫게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라고요…
마찬가지로.
연도교육에 하도 참석하라고 하니
‘하도 저렇게 말하니까 들어 주겠다.’
하고 참석하는 것이나
주일 미사를 ‘참석해 준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어떻게 은총이 함께 할까요?
강론말씀을, 연도 이론교육을
‘들어 준다.’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어떻게 깨달음이 찾아올 수 있을까요?
주님 말씀의 이러한 참된 의미를 간과한 채
겉으로 보이는 신비한 기적만을 바라는 사람에게
주님의 참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