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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2월13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2. 13. 06:04

오늘의 묵상(2022년02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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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지금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인데

국가 대표선수들이 운동하는 것을 보면

아, 저건 운동이 아니라 몸을 혹사 시키는 것

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훈련을 하더군요.

 

며칠 심한 감기로 빌빌대다가

마침 어제가 우리 구역의 본당 청소 날이라

청소를 거들어 땀을 조금 내고

오후에는 교구 연령회연합회 임원회의,

그리고 저녁식사 후 약 1시간 반을

부지런히 걷고 땀을 흘렸더니

몸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아침을 여는 분들도

조금 과할 정도로만 운동을 해서

건강을 유지하시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뱃살은 나오지 않게요.

그래야 면역력이 강해지고, 그러다 보면

토로나19같은 질병도 이기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6,17.20-26 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는 진복팔단,  

즉 여덟 가지 행복 선언이 산 위에서 선포되는데,

오늘 우리가 들은 루카 복음에서는

네 가지 행복 선언과 네 가지 불행 선언이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어

평지에서 하신 말씀으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 미움을 받고

누명을 쓴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시고,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 칭찬받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유물론자들은 주님의 이러한 말씀이

약자들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약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내세에 대한 희망으로 미화시켜

현실을 회피하도록 만든다고 비판했고

그래서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까지 비난합니다.

공산당이 가톨릭과 결코 화합할 수 없는

근본 이유라 하겠습니다.

 

(사진 : 이스라엘의 참행복 선언 기념성당)

 

그러나 주님의 이 가르침은 가난하고 굶주리며

슬픔과 박해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현실적 처지를 스스로 위로하라는

말씀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기를 바라고 행복을 추구합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려면

가난보다는 재물이, 슬픔보다는 기쁨이,

굶주림보다는 풍요로움이 당연히 필요한 데,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시네요.

그렇지만 아무리 읽어보고 찾아봐도

예수님께서는 복음서 어디에서도

가난이나 슬픔, 굶주림 자체가 좋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가난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말씀도,

가난을 행복으로 알고 참으라는 말씀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께 도움을 바라며,

그래서 더 쉽게 하느님 나라에 마음을 열 것입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은 재물을 믿고

재물에 의지하며, 부족한 것이 없기에

하느님께 쉽게 기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고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신 대로,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나눔으로써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초기 교부들의 공동체처럼 말입니다.

 

참행복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내세를 향한 현실 도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현실을 참되이 살아가게 하는

진정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