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2022년02월11일)
오늘의 묵상(2022년02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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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있을 때 한 겨울에 작전을 나갔다가
쏟아지는 폭설에 조난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전초기지를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고
한 팀을 인솔해서 산 정상부를 넘어 갔는데
저녁 무렵이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날이 저물자 금방 캄캄해졌는데
높고 깊은 산 속에서
눈은 얼마나 빨리 쌓이는지
사방을 둘러봐도 오직 눈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족이라도 하면 생명도 위험하니
이동하는 것도 여의치 않고
한 자리에 가만히 있으려니 눈에 덮여
얼어 죽을 것 같고..
무전으로 구조 요청은 했지만
거기서 찾아 오는 것이나 우리가 가는 것이나
같을 터이니.. 침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게다가 중대 본부도 계곳 중턱에 있었으니
우리처럼 고립되었을 것이 뻔했습니다.
결국은 산 아래쪽으로 일렬로 서게 해서
서로 포승 줄로 몸을 묶고
기어 내려가게 했습니다.
그래야 계곡으로 떨어지거나
대열에서 낙오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참 기어내려 가다가 참호를 발견했다는
선두의 연락을 받고
두 조로 나누어 좌우로 수색을 시켰더니
예상대로 지휘소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토치카를 발견할 수 있어서
그곳에서 구조를 기다리기로 했지요.
참 운이 좋았습니다.
무전기 배터리도 거의 방전 일보직전이었거든요.
다음 날도 폭설이 계속 내렸고
휴대했던 비상식량도 동이 났지요.
이틀 후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
구조대가 도착했는데 팀을 이끌고 온 분이
바로 저의 전임 중대장이었습니다.
진급을 해서 연대 군수참모로 부임했으니
우리를 구조하러 올 아무 이유가 없는 분인데...
김치 볶음밥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라면 봉지에 싼 후, 보온 밥통에 넣어
짊어지게 한 후 올라오셨던 것이죠.
“야, 임마, 아무 일 없었지?
네가 있으니까 나는 아무 걱정 안 했어.”
“짜식, 그래도 네가 눈에 갇혔다고 하니
보고 싶더라, 그래서 왔어”
하고는 덥석 끌어 안아주는데
그 투박스럽던 사람의 품이
얼마나 포근하던지요.
라면 봉지에 싼 김치 볶음밥.
여자분들은 결코 먹어볼 기회가 없는
천하의 별비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날 귀대 후 저녁에 그분과 함께 나눈
소주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7.31-37입니다.
복음 말씀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시고는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한마디 말씀만으로도 얼마든지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신데요.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으셨지만
그렇게 하셨습니다.
못 듣는 서러움을 나누시려던 것일까요?
사람들이 만날 때 조금만 웃어도
그 사람이 따뜻해 보이지요.
조금만 다정하게 악수해도 사람이 달라 보입니다.
저의 전임 중대장님이 눈을 뚫고 찾아와
덥석 안아주지 않고
그냥 눈인사로 끝냈다면
그분에 대한 나의 감사의 감정은 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아낍니다.
우리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게 일부러
손가락을 대시는 예수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만나면 서로 웃습니다.
하늘처럼 숲처럼 푸른 기운이 가득 차 있는
아이들이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지요.
아마도 불만을 가진 아이들일 것입니다.
어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만족과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면
웃을 수 가 없습니다.
웃음이 감춰집니다.
외국에 출장을 가보면 많이 느낄 수 있는데
호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출근하러
엘리베이터를 타면 서양 사람들은,
특히 미국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누구나 다 굿 모닝하며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직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여유를 찾을 만 하지 않나요?
한마디 말도 정중히 하면 주변이 환해집니다.
도움 준 이에게 고맙다고 하면 서로 행복해집니다.
자녀를 칭찬하면 그의 삶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걸 못 합니다.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말 더듬는 사람과 같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서 봅시다.
그분을 닮으려 애써 보자구요.
그러면 어느 날 주님께서는 “에파타!”
하고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이전에는 듣지 못하던 것을
듣게 해 주실 것 같습니다.
맑은 계곡을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
낭랑하고 아름다운 새소리.
상냥한 엄마와 젖먹이의 대화소리.
깔깔 웃어대는 골목길의 어린이들 소리.
꽃피는 소리도 들려올 것 같습니다.
평화의 소리입니다.
주님의 목소리입니다.
마음을 열면 행복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예수님의 넓고 따뜻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