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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1월23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1. 23. 06:51

오늘의 묵상(2022년01월23일)

 

 

바덴바덴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한국인들과는 인연이 있는 도시인데

이곳에서 88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되었기 때문이지요.

자료를 찾아보니 그때가 1981년이었습니다.

와, 제가 결혼도 하기 전이었군요.

 

제가 왜 바덴바덴이라는 도시를 기억하느냐 하면

바덴바덴과 어떤 인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도시와 이름이 같은 바덴이라는

독일의 정치인에 대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생활을 할 때, 군종사병이었던 분,

지금은 서울교구에서 이름만 대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만한 원로 신부님이신데

그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재무부 장관을 지낸 바덴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국가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랍니다.

 

그는 늘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았는데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계기가 있었답니다.

그가 젊은 시절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한번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허름한 여관에 여장을 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자신의 구두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바덴은 자기 같은 가난뱅이의 구두를

훔쳐 간 것에 너무 화가 나서

크게 원망하였습니다.

마침 그날이 주일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

여관 주인이 창고에서 헌 신발을 꺼내

빌려 주며 함께 교회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마지못해 교회에 갔지만 남들처럼

기도와 찬송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하느님께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을 수 없는 처지가 아닌가?

그런데도 저렇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리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 하는 사람인가?

그까짓 신발이야 다시 사서 신으면 그만인 데

괜히 하느님까지 원망하며

이렇게 화를 내고 있었구나!”

 

그 뒤로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조그만 일에도 늘 감사하며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 곁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느끼며 감사하며 살고 있는지

각자의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읽다 보니 제일 먼저

바덴 장관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자유와 해방입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 1,1-21 까지의

중요 구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확신에 차신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신 분이 아니고서는

감히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는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가난을 느낀다면 불평하기 전에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청해야 하고

그래서 물질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선각자들은 말씀하십니다.

 

가난과 소유는 별개의 것이라고도 하지요.

물론 우리와 같은 범인(凡人)들이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너무나도 어렵겠지만요..

 

우리가 잘 아는 법정 스님 같은 분은

무소유를 주창하셨지만

그래도 단 한 개의 찻잔만큼은

버릴 수 없었노라 고백하시더군요.

 

가톨릭에도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은

많은 성인들이 무소유의 삶을 완벽하게

실천하며 사셨음을 알고 

그분들의 말씀들을 익히 들어왔습니다.

가까이는 수도원에 계시는 분들이

그런 삶을 사시는분들이고요.

 

그리고 우리도 물질이 많다고 자동적으로

가난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정도는 알지요.

 

 

그런데, 돈과 재물이 넉넉한데도

가난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저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이

어찌 저렇게 더 욕심을 낼까?

그런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라

정말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아닐까요?

 

진정한 부자는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고 하지요.

결국 얼마만큼 물질에서 자유로운가?

여기에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은총 없이도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로또를 여러 번 사 본 경험이 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불가능 하지요.

 

절대적으로 주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결코 물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청해야만 주님께서 오시고

오셔서 삶을 바꾸어 주실 것을 압니다.

 

 

이제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욕심을 버릴 때도 되었고..

오직 주님께 의탁하며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할 터인데요.

 

돌이켜 보면, 제가 겪었던, 그리고 겪을

수많은 사건과 만남이

그분께서 오시는 장소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우연은 없었던 것이지요.

우연처럼 느껴졌을 뿐, 실제로는

섭리라고 표현되는 그분의 개입이었습니다.

기쁨과 자유를 주시려는 개입...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맙시다.

주님의 힘을 청하며 살아 갑시다.

하느님의 힘은 바로 성령이시고

그분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했나요?

우리는 기도하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