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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1월22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1. 22. 06:53

 

오늘의 묵상(2022년01월22일)

 

 

코로나19 상황이 2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생각도 못했던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안타까운 일들 중 하나가

죽음을 맞는 경우일 것입니다.

 

임종을 맞을 때, 가족은 물론

믿는 이들의 축복의 기도 속에서

이 세상과 작별을 하며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재회하기를 축원하며 이별의 순간을 맞는

오랜 전통 마저도 허락이 안 되는

안타까운 일들을 당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족들은 아무런 소식도 접하지 못한 채

정부 당국에서 임의로 화장까지 한 후

비로서 인도받는 비 인간적 처사들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 일도 그렇습니다.

 

그제, 우리 본당 선종봉사회 부회장님의

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느 형제님이 대장암으로 고생을 하시다가

근처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겨져

임종을 준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형제님은 믿는 이들의 오랜 전통대로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데

어찌하면 좋을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병원에 연락해보니,

방역지침상 보호자 외에는 어느 누구도

병원에 출입할 수 없노라.. 사제 마저도..

그런 답변이었습니다.

 

병원장과 협의를 해서 다음 날 알려주겠노라..

했지만, 큰 기대를 할 수도 없고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특성상

사실 하루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고민을 하다가 일단 본당 신부님께 알리고

대책을 부탁 드렸지요.

사실 별다른 조치를 할, 기대는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감동의 순간을 맞았습니다.

마침 외부에 출타 중인 신부님께서는

 

"일이 끝나는 대로 병원으로 가서

병원 입구에서 홀로 성사를 집전할 터이니

보호자는 환자와 그 시간에

묵주기도를 드리고 계십시오." 

 

라는 말씀입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신부님께 건의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보호자만이라도 병원 앞에서

신부님이 집전하는 병자성사(종부성사)에

참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래서 배우자 되시는 분과

연락을 주신 양동엽 데레사 부회장님과

구역장님이 참석한 가운데

신부님께서는 병원 입구에서 성사를 집전하셨고

영상으로 환자분과 통화를 하시는

기가 막히면서도 감동적인 풍경이

연출되었던 것이지요.

(유감스럽게도 저는 멀리 나가있어서

 참여를 못했습니다만..)

 

추운 겨울날씨에 병원 앞 실외에서

홀로 성사를 집전하시겠다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저는 사제란 무엇인가..

사제의 소명은 무엇인가,,

 

묵상하며 

새삼 깊은 감동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아침의 첫 기도 중에서,

그리고 매일의 묵주기도 안에서

사제들을 지향하지만

앞으로도 더 열심히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3,20-21로

너무나 짧은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간단히 짚어 보겠습니다.

 

오늘 복음 앞뒤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기적을 통하여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이때 수많은 군중이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몰려오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군중을 피해 강가에

배를 마련해 놓고 있을 정도였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학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이

당연히 못마땅하게 보였고, 그래서

 예수님께 악령이 들렸다며 악선전을 합니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친척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여 붙잡으려고

몰려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찬미를 불러일으키는

은총의 사건이 되었으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기와 질투, 중상과 모략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기적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했지만,

예수님을 가까이서 잘 알고 있는 친척들은

오히려 그분이 미쳤다고 생각하였으니..

 

지금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그분을 바라보고 있는지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시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친척들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분을 위험하게 생각합니다

 병자들을 낫게 하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일을 그렇게 판단했지요.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러 옵니다.

하시는 일을 말릴 작정입니다.

아마도 나자렛에서도 왔겠지요?

예수님께서 소년 시절을 보내신 곳이니까요.

친척들은 예수님의 본 모습을 모릅니다.

기적의 소문을 수없이 들었지만

받아들이지를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색안경을 끼고 바라봅니다.

 

시골 동네의 하찮은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넘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 짧은 표현 속에는

예수님의 또 다른 고뇌가 숨겨져 있습니다.

 

저희 Pr.에서는 2년여 동안 주회 때에

103위 성인에 대해 공부해오고 있는데

몇 주 전에 공부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진주의 순교자 정찬문 안토니오는

치명일기에 등장합니다.

그는 고려 말 대사헌을 지낸

정온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런 가문에서 천주교를 믿었기에

집안사람들이 먼저 박해를 가했습니다.

 

하지만 순교자는 눈물로 거절합니다.

결국 그는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문중에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맥을 동원해 배교시키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는 끝내 신앙을 지켰고

감옥에서 숨졌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합니다.

 모르면 ‘무슨 말’이라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가끔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지 않나요?

남에게 미쳤다고 생각하도록 하지는 않나요?

 

오늘 하루를 성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