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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1월19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1. 19. 06:53

오늘의 묵상(2022년01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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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회의 자료를 만들려고

커터 칼로 종이를 자르다가

그만 손을 베이고 말았습니다.

상처가 크지 않아 보이고 지혈을 하자

출혈도 곧 멈추었기에 밴드로 감고는

잊고 말았지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통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제서야 소독약을 바르고 머큐롬도 바르고

후시딘 연고도 바르고 했지만

오후가 되니 화끈화끈 열도 나고

나중에는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프더군요.

 

진통제까지 먹었는데도 가시지 않아

참다 참다가 다음 날이 되어 병원에 갔더니  

상처가 보기보다 깊었던 모양입니다.

치료를 받고도 한 일주일 고생을 했습니다.

 

작은 상처 하나에도 이렇듯 아픔을 느끼고

신경을 쓰이게 되는데

몸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어떨까요?

그분들은 평생 십자가를 안고 살아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그들의 불편함을 잘 모르지요.

여간해서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손가락을 조금 다쳤는데도 일상이 헝클어짐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주일학교에서 초등부 고학년

하기 캠프를 갔을 때 장애체험 프로그램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명은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되고

다른 한 명은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둘이 한 조가 되어 도와가며

목적지까지 가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때 많은 어린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애우들의 고통을 느꼈던 것이겠지요.

 

그때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들려준 말씀이

마르코 3,1-6 바로 오늘의 복음이었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도 여느 장애인과 다름없이

고통을 느꼈을 것이고 다름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외면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손이 불편한 그를

자유롭게 해 주시려 합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은 눈은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랍니다.

안식일에는 의료 행위마저도

못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정말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노기 띤 눈빛으로

그들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오늘 이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좋은 일을 하시지만,

바리사이들은 남을 해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입을 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갑자기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군요.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서커스단의 공연이 자주 있었습니다.

외국의 규모가 큰 어느 서커스단의 공연이었는데

덩치가 산만한 코끼리가 조련사의 손짓 하나에

몸을 굴리며 연기를 하더군요.

 

나중에 밖에서 보니 이 코끼리는

가느다란 쇠사슬에 다리 한 쪽이 묶인 채

말뚝에 매어 있었습니다.

저 덩치의 코끼리가 힘을 한 번만 쓰면

그 쇠사슬은 그만 끊어질 것 같던데..

 

나중에 들인 이야기입니다만

아기 코끼리 때 힘을 써도

쇠사슬이 끊어지지 않으니

그만 체념을 했던 것이고,

어른 코끼리가 되어도 그 체념이

고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체념 때문입니다.

코끼리는 포기와 좌절이라는

또 다른 사슬에 묶인 것입니다.

결국 코끼리는 서커스단 우리에서 죽습니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학대받고 고통 속에 살다가 죽는 동물들은

이제 더 이상은 없어져야 합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자

바리사이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예수님을 지켜봅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줄지만 보려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시선을 아셨겠지요.

그들은 당신의 기적을 숱하게 보았던 자들이니까..

그들이 한 번이라도 기적을 보고

마음을 열었더라면 하느님의 사랑이

흘러 들었을 터인데 그러지 못합니다.

서커스단 코끼리처럼 뛰어 넘을 줄 모르는

쇠사슬에 묶여만 있다 보니

기적을 보고도 도약할 줄 모릅니다.

 

주님께서 그곳을 떠나시면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주님을 다시는’ 만날 수 없습니다.

안식일이라고 그를 낫게 하시지 않는다면,

그는 영영 불편한 손으로 살아야 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를 이용해

예수님을 공격할 구실을 찾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위한 율법이고,

사람을 위한 안식일이다.”

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최우선으로 여기라는 가르침이고

말씀을 따르는 자는 주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모르는 새에 기적을 통해 이끌어 주시고

우리가 하는 일이 오그라들 때

바로잡아 주십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갈 곳은 어디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