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2021년07월19일)
오늘의 묵상(2021년07월19일)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오늘은 마태오 복음 12,38-42 까지가 선포됩니다.
예전에는 자물쇠와 열쇠가 한 세트였습니다.
자물쇠는 반드시 열쇠가 있어야만 열 수 있었지요.
그런데 요즈음 자물쇠는 그렇지 않습니다.
눈의 홍체를 확인하여 열리는 자물쇠
지문을 인식하고 열리는 자물쇠
우리 집에도 있는 번호를 누르면 열리는 자물쇠
자동차도 버튼만 누르면 열리거나 닫힙니다.
스마트 키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 동네에 아주 오래 된 철물점이 있는데
“어떤 문이든 다 열어 드립니다”
라고 써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욕실의 작은 전구를 사려고 들렸는데
마침 사장님은 안 게시고 안 주인만 계시기에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정말 어떤 문이든 다 열 수 있어요?”
“그럼요, 일반 가정용은 번호키까지 다 열어요.”
그렇군요. 정말이지 세상의 문이란 문은
사람의 기술로 다 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아무리 홍체 기술이니 지문 인식이니 하는
첨단 자물쇠로 잠긴 문이라도
사람의 기술로 못 여는 문이 없습니다.
오션스 13이던가요?
헐리우드 도박장의 최첨단 방호망을 뚫고
금고 털이에 성공하는 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습니다. 속편도 몇 개 나왔던데..
하지만 절대로 못 여는 문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의 문’입니다.
마음의 문은 천사가 와서 두드린다 하여도
스스로 열고 나오지 않으면 결코 열리지 않습니다.
회개는 스스로 마음의 빗장을 풀고
주님께 나오는 행위입니다.
‘마음 한 번 닫히면 바늘 하나
찔러 넣을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회개가 어려운 것은 마음이 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고집 센 사람들을 수없이 꾸짖으시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도무지 열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회개를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주님을 얕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사야 예언자가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
등을 돌리고 말았다.”(이사 1,4)라고
나무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자기 힘과 능력을 과신하고
세상 것이 주님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하여
주님을 얕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둘째는 자기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졌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 같네요.
한 번 두 번 죄를 짓다 보면 그것에 익숙해져서
점차 감각이 무디어집니다.
죄를 짓고 살면서도 의식하지 못하거나,
주님께서 다 용서해 주시리라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경우입니다.
셋째는 회개하기를 미루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세상 것을 좀 더 즐긴 다음에
나중에 의탁하겠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삶의 변화를 미루는 경우일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끝까지 회개하기 어렵겠지요?
잠시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 봅니다.
지금 주님께 가까이 있지 못하다면
나는 이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지요?
마음으로 깊이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내 삶 안으로 들어오시지
못하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의 자리를 비워놓지 못하는
나를 새삼 꾸짖어 봅니다.
어제, 오늘 산에 오를 때는
숨이 턱턱 막히고 흐르는 땀이 눈에 들어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상에 도착해서 만세 한 본 부르고
하산하는 길은 바람과 그늘로
시원하고 상쾌하기만 합니다.
그렇지요.
세상은 고통이 없는 기쁨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는 아마도 금년 최악의 더위가
함께 할 모양입니다.
짜증을 내며 산다고 더위가 꺾이겠습니까?
이왕이면 웃으며 친구처럼 지냅시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코로나 방역이 4단계까지 격상되었는데
이 폭염에 휴일도 없이 고군분투 하시는
의료진과 방역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드라이브 스루, 워킹 스루 같은 검역소는
에어컨도 없던데..
관광버스나 아니면 쉬고 있는 시내 버스라도
한 대씩 보내서 에어컨 시원하게 켜놓고
고생하시는 직원들이 틈틈이
땀이라도 닦고 잠시 눈이라도 붙일 수 있게
조치해 줄 수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