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2021년07월13일)
오늘의 묵상(2021년07월13일)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직장생활을 할 때의 경험담을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A라는 여직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 제가 사회 초년병 시절에는
각 부서마다 타이피스트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모두 개인별로 지급된 PC로
마음대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지만
예전에야 PC가 있었나요?
부서별로 타자기가 한 대씩 있고
이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여 기안을 올리고
결재와 품의를 하였습니다.
그 타자를 치는 타이피스트가 A였습니다.
A에게는 갑과 을이라는
두 사람의 상급자 대리가 있었는데
갑 대리는 A가 어려울 때 잘 도와주고
친절하고 이해심도 많은 사람입니다.
을 대리는 A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야단을 치고, 화를 잘 내고 큰 소리 지릅니다.
어느 날 부장님이 갑 대리와 을 대리에게
00시까지 어떤 일을 마치고
보고서를 올리라고 하였습니다.
제 시간에 보고하지 않으면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고까지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정신 없이 바쁘게 일을 하고
드디어 서류를 만들어 A에게 타이핑을 부탁합니다.
공교롭게도 동시에 말이지요.
00시까지는 한 사람의 서류를 만들
시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A는 누구의 일을 먼저 할까요?
이 글을 보는 분이 A라고 한다면
어느 대리의 부탁을 먼저 들어줄까요?
당연히 평상시에 사랑으로 대해준
갑 대리의 일을 해주지 않겠냐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해야 맞는 것 같지요?
그러나 천만에 만만에 콩떡입니다.
A는 절대 갑 대리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을 대리의 사나운 호통이 더 무섭고
갑 대리는 이번에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오늘 복음 말씀을 읽으며
갑자기 떠오른 이야기였습니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신
갈릴래아의 마을로서, 지금도 베드로 장모의 집으로
추정되는 집이 있고, 주변 풍광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성지로 꾸며져 있다고
성지순례를 다녀온 실비아 마님이 이야기 하더군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등
세 고을의 사람들을 꾸짖으십니다.
이 고을들은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인들의 성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서에서 교만하고 타락한
이방인들의 도시를 대표하는 티로와 시돈,
그리고 의인 열 명도 없어서 이미 멸망 당한
소돔보다도 이 고을들의 죄가 더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시고,
제자들이 평화를 빌어 주었지만,
사람들은 그 기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고
평화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에 가셨을 때에는
어땠나요? 정반대였습니다.
마태오 복음 15장 21절부터 읽어보면
그곳에서 한 이방인 여인이 예수님께
자기 딸을 고쳐 주십사고 청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두 번이나 거절하시지요.
그러나 그 여인은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며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고을들은 그렇게 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은 반면,
이방인의 도시에서는 절실한 믿음을 드러내며
기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에 대한 심판이
티로와 시돈, 소돔보다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 중에 똑같이 조국을 배신해도,
일개 병사의 배신보다
장군의 배신에 대한 죄가 더 크지 않겠습니까?
단돈 만 원을 훔쳐도
일곱 살짜리 아이가 훔친 것보다
스무 살짜리 청년이 훔치는 죄가 더 큽니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
더 큰 책임과 의무를 가진 사람은
그만큼 죗값도 큰 법이지요.
이 세상에서 죄인으로
취급 받는 이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범죄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그들의 인생 역정을 자세히 살펴볼 때,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환경과 처지였다면
과연 그들처럼 불행한 길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코라진과 벳사이다에서
복음 선포와 많은 기적을 행하셔서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기적도 볼 수 있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지은 가장 큰 죄는
무관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거스르는 가장 큰 죄도
무관심이 아닐까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지 않는 이들보다 더 올바른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는지요?
멸망한 소돔을,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 은총에 충실히 응답하면서
나날이 회개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