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2021년05월22일)
오늘의 묵상(2021년05월22일)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십자가 아래의 성모님과 사도 요한
요한 사도는 열두 사도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라는
말씀이 여러 차례 등장하지요.
예수님께 사랑 받는 제자 요한은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았고,
예수님께 속마음을 여쭈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고,
이를 가장 깊이 있는 신학적 언어로 기록하였으며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예수님의 최후를
십자가 아래에서 지켜 보았으며
예수님께서 당신 어머니의 노후를 부탁하는
유언을 남기시자 이를 받든 제자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수위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요한 사도도 그 수위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제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요한 복음의 맨 마지막 구절인 오늘 복음에서
저자인 요한 사도께서도 그 사실을
확인하시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시자,
예수님의 신뢰에 대해 혼란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에수님께 가장 사랑 받는 제자인
요한의 미래를 여쭈어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애매모호합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의 답변이 그렇게 기록된 것은,
복음서의 저자인 요한에게는
그 질문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요한이 자신의 복음서에 남기고자 했던 말씀은,
이 제자가 바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고 기록한 증인이고,
그의 증언은 참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로부터
자신이 가장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말이나 외적인 표현으로 확인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인보다 더 큰 사랑은
제자들처럼 죽음을 무릅쓰고서도
자신이 보고 체험하고 느낀 사랑을
세상에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며,
그분의 삶과 부활의 증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세상에 그리스도를 증언할 차례입니다.
오늘이 5월22일 토요일,
벌써 2021년도 부활주간의 마지막 날입니다.
어제 저녁 꾸리아 회합을 다녀와
실비아 마님이 깎아준 참외를 놓고 마주 앉았는데
TV 화면에 나오는 장면이
코를 찡하게 아프게 합니다.
불치병으로 병원으로 떠나야 할 때가 되자
할머니는 혼자 남을 할아버지에게
전기 밥솥에 밥을 짓는 방법을 알려주시는데
80이 넘은 할아버지는 눈물만 흘릴 뿐
듣지도 말도 못하십니다.
부부의 날을 맞아 뉴스 앵커가
부부의 의미를 설명하는 중이었습니다.
결혼과 관련된 서양 명언 몇 개가 생각납니다.
긴 부부생활은 매일 아침의 좋은 커피와 좀 닮았다.
나는 거의 매일 마셔왔지만, 여전히 즐긴다.
사랑은 영원히 용서를 실천하고,
습관으로 바뀔 부드러운 눈길을 보내는 것..
공감이 가십니까?
저도 어느 듯 실비아와 38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훌쩍 흘러갔는지..
벌써 두 손녀와,
머지않아 태어날 또 한 명 손녀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있습니다.
솔직이 말하면 저는 남들이
할아버지! 라고 부르는 호칭이
아직도 참 낯설게 느껴집니다.
내가 할아버지?
아직 마음은 세시봉 시절 그대로인데..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어쩌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낯선 초로의 늙은이가 빤히 쳐다보고 있어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을…
조금 전, 립크림을 가지러 안방에 들어갔다가
잠들어있는 실비 마님을 보니
그녀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얼굴에는 주름도 보이고…
흰 머리카락도 보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예뻐서 참 다행입니다.
나이 먹으면 더 점잖아져야 할텐데
글쎄요, 백수 컴플렉스인지
별 것 아닌 일에도
나도 모르게 화를 내며 큰 소리를 냅니다.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서 앞으로는 화가 나면
이런 말을 할까 생각 중입니다.
“당신 말이야.
성질 같아서는 못 살겠는데
당신이 예쁘니까 살아주는 거야”
괜찮을까요? ㅎㅎ
그렇습니다.
나이 먹어 이런 투정을 벌린다는 게
어떤 분들에게는 꿈 같은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힘들어할 분들을 기억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