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08월 02일 주일 : 미사 - 연중 제18주일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8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독서 말씀에서 주님의 자비로운 초대를 만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양식은 우리의 가장 깊은 갈증을 풀어 주며 세상 것들로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가시게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값을 치를 수도 없는 이러한 선물을 주님께서는 거저 주신다고 전합니다. 주님의 자애에 깊이 감사하며 사랑의 선물인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 입당송 시편 70(69),2.6 <대영광송> 본기도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니 주님을 창조주요 인도자로 모시는 이들과 함께하시어 주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 모든 것을 지켜 주소서. 말씀의 초대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초대를 전해 준다. 목마른 이들을 물가로 부르시는 주님께서는 돈이 없는 이들도 술과 젖을 살 수 있으며, 당신께 다가오는 이들은 살게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자애로이 영원한 계약을 맺으실 것이다.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사랑과 믿는 이들의 확신을 고백한다.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다. (복음)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온 군중을 보시고 가여운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도록 사랑을 베푸셨다. <와서 먹어라.> 화답송 시편 145(144),8-9.15-16.17-18(◎ 16 참조) 제2독서 <어떠한 피조물도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복음환호송 마태 4,4 복음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신경> 보편지향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물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영적인 제물로 받아들이시어 저희의 온 삶이 주님께 바치는 영원한 제물이 되게 하소서. 영성체송 지혜 16,20 참조 영성체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후 기도 주님, 천상 양식으로 새로운 힘을 주시니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어 저희가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소서. 오늘의 묵상 우리 전통 음식 문화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상차림입니다. 밥과 반찬을 주로 하여 격식을 갖추어 내는 상차림은 상을 받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서 그 이름이 달랐습니다. 아랫사람에게는 밥상, 어른에게는 진지상, 임금에게는 수라상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먹는 사람 수에 따라서 혼자 먹는 밥상을 외상 또는 독상, 두 사람이 먹는 밥상은 겸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외상으로 차려진 반상에는 삼 첩, 오 첩, 칠 첩, 구 첩, 십이 첩이 있는데, 당연히 임금의 수라상에는 십이 첩이 올려집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자 세상을 구원하실 임금이시니 십이 첩은 기본이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음식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가장 간결한 차림으로 평민이 먹었다는 삼 첩 반상보다 빈약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아낌없이 베푸시는 예수님의 기적의 결과와 제자들의 행동에 주목합니다. 사람들이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 모두를 배불리 먹이실 뿐만 아니라 그 음식이 풍성히 남았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 먹었고, 남은 것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가지고 있던 것을 기꺼이 내놓음은 물론 분배자로서도 봉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겸손한 밥상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배고픈 백성을 향한 동정심에서 비롯된 생명이 넘치는 풍성함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빵의 기적은 단순히 식사를 나누는 인간적 체험을 넘어 사랑을 실천하려는 하느님 백성의 희망과 연결됩니다.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난 당신의 사랑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은혜로 채워 주십니다. 평화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