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05월03일 주일 : 미사 -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생명주일)
오늘 전례 해마다 부활 제4주일은 ‘성소 주일’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인 성소(聖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교회는 이 모두를 존중하는 가운데, 오늘 성소 주일은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의 증진을 위한 날이다. 성소 주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마태 9,37-38)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정하였다. 이날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소를 계발하고 육성하는 일에 꾸준한 기도와 필요한 활동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를 자각하게 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며 성소 주일입니다. 기쁨과 평화의 샘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앞날을 성자의 권능에 맡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어, 이 세상 일을 하면서도 생명의 샘으로 이끄시는 좋은 목자를 떠나지 않게 하시기를 청합시다. 입당송
시편 33(32),5-6 참조
<대영광송>
본기도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앞장서 가신 나라로 나약한 양 떼인 저희를 이끄시어 하느님과 함께 천상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말씀의 초대 (제1독서). 베드로는 회중들에게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를 용서받으라고 탄원한다. (제2독서). 베드로는 예쉼께서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다고 말한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 양들은 당신 목소리를 알아듣고 당신을 따른다며, 당신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화답송 시편
23(22),1-3ㄱ.3ㄴㄷ-4.5.6(◎ 1) 제2독서
<여러분은 영혼의 목자이신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복음환호송 요한 10,14
참조
복음 <나는 양들의 문이다.>
<신경> 보편지향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물기도
주님,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로 저희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감사하며 드리는 이 제사가 저희에게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영성체송 착한 목자, 당신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네. 당신 양 떼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 사도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반박하는 이들 앞에서도 담대히 부활을 증언합니다. 우리도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하신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주님을 따르며, 우리를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시는 하느님의 보호 아래 용감한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착한 목자이신 하느님, 성자의 고귀한 피로 구원하신 양 떼를 인자로이 돌보시고 하늘의 영원한 풀밭으로 이끌어 주소서.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문’에 빗대어 드러내십니다. 그리스 말에 ‘문’은, 안팎을 구분하는 개념의 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드나드는 ‘통교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통교하는 문은 안팎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선사합니다. 그 자유 안에서 예수님과 신앙인은 서로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서로를 닮아 가며, 서로를 통하여 생명을 공유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목적지에 다다르고 그 목적지에서 목자와 양들은 서로 만나 풀밭의 행복을 누립니다. 그러나 길을 벗어나 걷게 되면 힘들고 불편해서 목적지에 다다르기는커녕 자기 존재마저 부정하기에 이릅니다. ‘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나는 무엇을 해도 안 돼!’ …….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를 탓하며 세상살이마저 내려놓을까 고민하기에 이릅니다. 고민의 끝은 결국 자신 안에 갇혀 버리는 외톨이의
삶입니다. 자기 스스로 만든 ‘길’이 아니라 통교와 소통, 그리고 서로를 살찌우는 생명으로 열린 길이어야 합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다름을 같음으로 만들려고 떼쓰듯 덤벼드는 완고한 투정을 내려놓고,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 예수님을 찾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한다는 것을 자기 삶의 만족이나 욕망의 충족으로 폄훼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신앙은 서로의 목소리를 애써 꼼꼼히 듣는 이들의
여유 안에 풍성한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