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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8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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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니 중세 때부터
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더군요.
연금술이란 값싼 금속에서 금 같은 귀금속을
정련하는 기술이라고 하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모든 만물이
물, 불, 공기, 흙의 4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원소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물질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 원소의 비율을 바꾸면
다른 물질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답니다.
그래서 이집트,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등에서는
이 연금술을 연구 열기가 대단하였나 봅니다.
또 시간여행을 하는 기계, 이른바 타임머신을
만들려는 사람들도 꽤 있었나 봅니다.
아, 갑자기 생각이 나는게..
예전에 미국 출장 중에 공휴일이 있어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놀라간 적이 있었는데
백 투더 퓨쳐 라는 영화 세트장이 있더군요.
거기에는 시간여행을 하던 영화에 나오는
자동차가 있는데, 그걸 타니까 (물론 비싼 돈을 주고요),
정말 영화처럼 세월이 휙휙 바뀌며 지나가더군요.
이론적으로는 빛보다 빠른 물체를 이용하면
과거로 갈 수 있다는 설명이 되지만
미래로 가는 방법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세월을 거슬러 다닐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옛날로 돌아가서 아쉬웠던 역사를 되돌리고 싶고
또 미래로 가서 로또 당첨 번호를 모두 적어오면
정말 떼부자가 될 수도 있을 텐데요. ㅎㅎ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앞날을 모릅니다.
알려고 애를 써도 알 수 없고..
그렇지만 미래를 알게 되면
삶의 의미는 반감되고 말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을 만나도 끝을 아니까 덤덤해지겠지요.
성공을 거두어도 결과를 알기에 싱거울 것이고요.
그런 걸 보면, 희망은 미래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현실 안에 있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 22,1-14),
임금은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초대받은 이들은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절합니다.
뚜렷한 이유도 없습니다.
임금을 무시한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겠습니다.
화가 난 임금은 그들에게 벌을 주고
다른 이들을 초대합니다.
거리에 나가 아무나 데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어쨌던 그래도
임금은 잔치를 계속하려는 것이지요.
이 말씀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바꾸시는 분이 아님을 알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에게 임금은 벌을 내립니다.
우리가 하찮은 이유로 거절해도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부르신다는 것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비유의 핵심 같습니다.
임금의 초대를 우습게 여긴 이들은 누구였겠습니까?
뭘 제대로 몰랐거나 착각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임금의 청을 거절하였겠습니까?
그들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며,
나중에 초대받은 이들은 이방인 신자를 말한다고 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초대를 계속해서 거절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선택은
이제 이방인들에게 내려집니다.
우리 모두는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생명을 받은 자체가 주님의 초대인 것이지요.
잔치란 그 자체로 기쁜 일이므로
누구든 즐겁게 지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잔치의 예복은
기쁘게 사는 생활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믿음의 길을 기쁘게 걷는 자세 말입니다.
기쁨도 없이 마지못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삶이 무거운 멍에로만 느껴진다면
기쁨의 예복을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너무 무겁게 다가오면
재빨리 그 원인을 찾아야 하고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기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것이 오늘 복음의 가르침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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