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중국근대사 - 중국 최초의 여성 누드 모델 파동

주님의 착한 종 2015. 10. 13. 17:52

 

상하이美專 학생들이 누드 모델 쳔샤오쥔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명호 제공

 

1911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미술전문교육기관 상하이미전(上海美術專科學校)은

1914년 교과과정에 인체사생을 개설하고 남자 모델을 공모했다.

“혼이 그림에 빨려들어가 기(氣)가 손상되고 사람이 죽는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응모자가 없었다.

15세 소년이 자원했다.

이름이 허상(和尙)이었는데 실제 승려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회가 거듭되자 능청스러울 정도로 태연해졌는데

발육이 덜 된 인체의 사생에 학생들이 싫증을 냈다.

상하이미전은 높은 보수를 내걸고 장년 모델을 구했다.

지망자들이 많았지만 소묘 교실에 들어오면 진땀을 흘리다 달아나곤 했다. 20여 명이 그랬다.

1917년 5월 청둥(城東)여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 미전 교장 류하이쑤(劉海粟,1895~1992)를 찾아와

누드 모델을 자청했다.

잡화상집 외동딸인 천샤오쥔(陳曉君)이었는데 딩후이(丁輝)라는 미전 학생과 사귀고 있었다.

며칠 전 비너스(Venus) 석고상을 함께 보던 딩후이가

“아름답지만 생명이 없고 중국 여인이 아니다”라고 투덜대면서

예술을 위해 헌신할 여성이 없다고 한탄했다.

천샤오쥔은 활달하고 노래와 무용을 좋아했는데

‘예술’이나 ‘헌신’ 같은 용어에 민감할 연령이기도 했지만

무슨 일이건 결정하는 데 질질 끄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 해 여름 학생성적(成績)전람회에 누드 사생 50점이 전시되었다.

부인이 조르는 바람에 전람회 구경을 왔다가 혼비백산한 청둥여학교 교장 양바이민(楊白民)이

‘시보(時報)’에 류하이쑤를 생식기 숭배자이며 요괴(妖怪)라고 비난하는 글을 실어 문제를 제기했다.

천샤오쥔이 퇴학당했음은 물론이다.

류하이쑤는 즉각 반박했지만, 류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상인연합회에서는 류를 동물에 비유하는 성명서를 냈고

상하이(上海)현 현장은 인체 사생 금지령을 선포했다.

상하이와 주변 5성(省)의 연합군 사령관이며 최대 군벌 중의 하나였던 쑨촨팡(孫傳芳)까지 가세해

류에게 체포령까지 내렸던 모델 파동은 10년이 지나서야 가라앉았다.

1985년 90세 기념 전람회에서 류하이쑤는 저우언라이(周恩來)의 부인 덩잉차오(鄧穎超)에게

예술 생애를 회고하면서 모델 파동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 출처 칭다오 도우미 마을, 스프링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