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 마태오 13,18-23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 초라한 인생의 결실 앞에서 >
이것 저 것 작물들을 잔뜩 심어만 놓고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돌보지
않는 제게 한 전문 농부께서 이렇게 ‘뼈있는’ 충고를 하셨습니다.
“농작물들은 주인 발자국 소리 듣고 크는 법이라네.
틈만 나면 자주 가봐야 혀.”
이른 봄부터 부지런히 땅을 갈아엎고, 거름을 섞고,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고, 씨를 뿌리고, 물을 대고, 약을 치고, 잡초를 뽑아주면서
애지중지 키운 작물들은 어찌 보면 농부에게는 자식, 혹은 분신과 다름
없습니다.
수해 등 으로 한 순간에 그 ‘아까운 것들’ 다 날렸을 뿐만 아니라,
논이고 밭이고 살아갈 터전이고 형태도 없이 사라져버려 망연자실해있는
농부들의 그 허탈한 마음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오를 뿐입니다.
주님의 위로에 우리의 위로가 보태져서 그분들, 조금이나마 얼굴을
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수해복구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주민들의 말씀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오셔서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많은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함께 해주시니, 따뜻한 마음 보여주시니,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에,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마음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오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유난히 제게 크게 다가옵니다.
불과 서너 달 전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호박 모종 몇 개 심었을 뿐인데,
지금은 넝쿨이 자라나 꽤 큰 언덕을 다 덮고 있습니다.
큰 호박잎 밑 비밀스러운 곳에는 축구공보다 더 큰 호박덩어리들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습니다.
이른 봄 제 눈에 제대로 띄지도 않던 가냘픈 깻잎 모종 조금 심었을
뿐인데, 지금은 자라고 자라서 제 키 만해 졌습니다.
그간 따먹은 깻잎만 해도 리어카로 몇 리어카는 될 것입니다.
가지, 고추, 상추… 꽤 쏠쏠한 재미를 봤습니다.
제대로 된 결실을 맺은 작물들,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릅니다.
생각만 해도 흐뭇합니다. 고맙습니다.
반면에 그렇게 ‘쌩 고생’하면서 돌보고 키웠는데 전혀 협조하지 않고
수확은 커녕 말라비틀어져버린 작물들을 바라보니 화가 날 뿐입니다.
모종 값만 해도 얼만데… 하며 본전 생각이 납니다.
우리를 이 땅에 심으시고 돌보시는 우리의 주인이시자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시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탐스런 열매를 가득히 맺는 인생 앞에 하느님께서는 흡족해하실 것입니다.
전혀 결실을 맺지 못하는 인생 앞에서 하느님께서도 안타까우실 것입니다.
나는 이 한 세상 살아오면서 별로 이룬 것도 없고, ‘이거다’ 하는
결실도 없는 초라한 인생을 살아왔는데, 어쩌나 고민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 타고난 토양이 다르기에 어쩔 수 없이 결실도 다릅니다.
주어진 그릇이 다르기에 수확의 양이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인류 발전을 위해, 타고난 달란트를 바탕으로
한 생산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풍성한 결실을 거둔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은 없겠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닙니다.
반드시 외적으로 드러나는 결실만이 다가 아닙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인 결실, 기도의 결실, 희생의 결실,
인내의 결실도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타고난 이 세상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분도 나름대로의 결실을 거두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 있어 결실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것만 해도, 생명을
지속시키고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결실입니다.
우리 각자의 나날 안에서, 우리 각자의 오늘 처지 안에서, 우리 각자의
인생 안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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