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2007년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주님의 착한 종 2007. 7. 24. 07:35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마태오12,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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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영혼의 서랍을 활짝 열고>


   오늘 복음은 난해하기 그지없는 복음이어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오늘 복음을 바라봐야

합니다.


   기껏 걱정 되서 찾아온 어머님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던지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성모님을 비롯한 예수님의 친척들, 주변에 둘러서 있던 사람들 처음에

는 이 말씀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해 한동안 난감해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한’ 예수님 말씀의 이면에는 작은 시냇가에서의

평화로움을 떨치고 거센 파도가 요동치는 넓은 바다를 선택하신 예수님의

비장함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한 곳에 머물러 계실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에게 나자렛은 너무나 좁은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양에 차지 았습니다. 결국 그분은 만왕의 왕, 온 세상의 주인,

 천지의 창조주이신 주님이시셨기에 언젠가 한번 세속적 인연의 끈을 끊는

아픔이 필요했습니다. 탈바꿈이 필요했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사명 때문에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아쉽고, 정말 송구스럽고, 정말 안타깝지만,

이제 예수님은 나자렛을 뛰어넘으실 때가 온 것입니다. 세상만물, 인류

전체의 구원이라는 큰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예수님은 서서히 혈육의 정을

초월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난감한 배경의 표현이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인 것입니다.


   눈물을 머금고,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더 큰 바다로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 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성모님의 모습,

다 ‘짠’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꽤 슬픈 복음을 묵상하면서, 혈육의 정을 단호히 끊고 먼 길

떠나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들의 인생도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의 인생길, 신앙생활, 어찌 보면 나그네길입니다. 늘 떠나야

합니다. 보다 향상된 삶을 향해, 보다 본질적인 삶을 향해, 보다 가치

있는 삶을 향해, 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길을 향해 부단히

떠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물이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물러있으면 썩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의 뜻을 제대로 한번 실천하고 싶다면 방법은 한 가지 뿐입니다. 보다

자주 떠나는 것입니다.


   나를 묶어놓는 악습, 과거의 틀,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거듭

성찰해봐야 할 것이며, 거듭 새롭게 시작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로 죽음보다 싫은 것이 떠남이겠지만,

한번 마음 크게 먹고 떠나보십시오. 기적 같은 일이 거기서 생깁니다.

또 다른 세계가 우리 시야 앞에 활짝 열립니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혜안이 열리기도 합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서 그토록 염원했던 하느님을 만나

뵙기도 합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새롭게 영적 여행을 떠나보시기를 권고합니다.

떠나기에 앞서 약간의 노력도 해보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서랍을 활짝 열고 깔끔하게 한번 청소도 하십시오. 천국을 위한

여행 가방에 들어가지 못할 짐들은 과감하게 정리도 해보십시오.

무절제, 과도한 욕심, 지나친 자만심, 끝도 없는 자기중심주의…


   역설적이게도 고통의 근원은 소유입니다.

유에 대한 집착이 번뇌의 출발점입니다. 인연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슬픔의 근원입니다.


   철저하게도 모든 것을 버린 예수님, 그토록 정겨웠던 인연마저도 훌훌

털어버린 예수님이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 세상 모든 사람을 소유하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린 예수님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이셨기에 그리도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권력가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직 하느님께만 묶인 대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최종적인 지향점은 하느님입니다. 비록 모순투성이고,

갖은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은

높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하느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처럼 되는 비결의 첫 단계는 세상만사를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모든 것이 OK입니다.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리도 놓기 힘들었던 명예나 직책,

재산이나 학벌도 그저 모두 지나가는 바람이 되고 맙니다. 그토록 놓기

힘들었던 인연도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이 되고 맙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남게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하신 하느님 그분

뿐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